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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긁적

소중함을 깨닫는 순간

by 키운씨 2018. 1. 6.



다음글은 10년전 2007년도에 일본에서 머물때 작성한 일기중 하나이다
깨닫는다는 말의 의미를 그때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던 것 같다






작성일 : 2007-03-18 02:47:38
30여년간 내가 바라봐온 할머니는 언제나 연세에 비해 정정하셨던 모습이었다.


내가 어렸을땐 집에서 모은 공병을 모아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를 사주셨고, 봄이 되면 들과 밭에서 자라는 냉이를 캐다가 냉이국을 끓여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유년시절 동안 내 곁에 언제나 할머니가 계셨고 내가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고3때 나의 하숙을 시작으로 할머니와 떨어져 살게 되었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올때도, 방학을 맞이하여 집에 돌아왔을때도 언제나 반갑게 맞이해 주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기억난다.


하지만 그렇게나 변함없을 것 같았던 당신께서도 어느새 90세를 넘기고 계셨다.


수년 전부터 움직이실 기력이 부족하셨는지 문밖으로 나오시는 일이 차츰 줄어들기 시작했고 때때로 이해하기 힘든 일을 하신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했지만 마지막 기억에도 나에게 만큼은 매우 자상하셨고 인자하신 분이셨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할때는 고향으로 돌아왔을때마다 서울에서의 생활에 대해 묻곤 하셨고, 내 여자친구에 대해 물어보셨다.


나는 돌아가시기전까지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았다.


왜 여자친구를 데려오지 않느냐고 물어보시곤 하셨지만 나는 많이 바빠서 또 오기가 힘든거라고 말씀드리곤 했다.


내가 일본을 오기전까지 매일을 방에서 누워만 계셨던 할머니는 거동도 불편하셨고 활동도 거의 없으셨다.


매일같이 잠만 주무시는 할머니께 내가 일본으로 떠난다고 말씀을 드린것은 떠나기 불과 몇시간 전이었다.


먼 여행을 떠나는 손자를 앞에 두고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지셨던 모습은 아직도 나의 머리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내 나이 벌써 30이 넘었건만 할머니 앞에서 재롱을 부렸던 손자를 너무 먼 곳으로 보내는게 마음에 걸리셨었나보다.


내가 드린 그 인사가 생전에 손자에게 받게 될 마지막 인사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일까?


고등학교 졸업후 10여년간 고향에서 보다는 타지에서 오랜동안 생활해온 나에게 해주실 말씀이 별로 없으셨을지도 모르고 너무나 급작스런 상황에 할말을 잃으신건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그렇게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몸 건강히 잘지내라는 말씀은 하셨지만 그 외의 말씀은 없으셨다.


그저 가만히 나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시며 당신의 얼굴에서 보여지는 세월의 굴곡들보다 더 많은 것들을 기억하시기 위해 오랜동안 내 손을 꼬옥 잡아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할머니와 포옹을 하고 절을 드린후 그렇게 나는 일본으로 떠나왔다.


때때로 한국의 집에 전화를 드릴때는 할머니와 통화를 할 수 있었고 조금은 아슬아슬하게 남은 돈을 모아 카메라를 사서 이곳에서의 내 모습을 사진에 담아 한국에 보내곤 했었다.


그리고 년말쯤엔 한국에 들어가 여러가지를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었다.


그렇게 매일 일본어를 공부하며 일본에서의 생활에 젖어들때쯤 어느날 갑자기 한국에서 한통의 전화가 왔다.


그때가 한국을 떠나온지 한달 가까이 되어가던 때였다.


사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은 아니었다.


난 알고 있었다. 분명 내가 여기 있는 동안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걸 한국을 떠나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무것도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았던 것이었다. 모든짐을 벗어버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전화를 통해 알게 된 할머니의 소식...


한국행 비행기안에서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비행기 창문에 비쳐진 내 모습이 참으로 어리석게 보였다.


1년만 늦게 올걸... 1년만...


좀더 내 마음을 보여드렸어야 했는데... 아직 못해드린게 많은데...


떠나오던 날 나를 그토록 애처롭게 바라보시던 그 모습이 생각나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밤이 되서야 한국에 도착했지만 다시 찾은 고국이 그토록 낯설게 느껴지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겨우 한달만에 돌아왔건만 1~2년은 지나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할머니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다.


내가 일본에 있어야 할 이유와 다시 일본으로 가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난 무언가를 찾기 위해 일본을 왔지만 과연 그게 그렇게 가치있는 시간인건가?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있는 그 시간동안 무엇을 찾아 되돌아 와야 하는가?


사실 아직도 그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지만 정확히 집어내기 힘들다.


내가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직도 열심히 찾아가고 있다.


다만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나에게 정말 소중한 것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할머니를 그렇게 보내드리고 나서야 겨우 알게 되었다.


나는 정말 행복한 놈이구나...


어느새 어머니, 아버지도 머리가 새하얗다.


늦기전에 효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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