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신카이 마코토의 신작을 혼자 극장에서 내돈들여 감상하면서 깨닫게 된 부분이 있다
나는 지금까지 감수성이 풍부한 녀석이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오늘 갑작스럽게 깨닫게 된 사실이
지금까지의 내 삶에 있어서 나는 나의 감성을 자극하는 시간이 꽤나 많았다는걸 알게 되었다
그로 인해 내가 가진 감성은 그저 기회가 많았을뿐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생각을 접게 되었다
영화내내 이상하게도 내용에 흥미도 없고 집중도 안되는 현상이 있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오늘 나에겐 애기 엄마를 에스코트하고 정해진 시간에 스케줄을 체크하며 차량 이동을 해야 하는 임무가 있었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이 되면 극장을 나가서 다음 일정을 진행해야만 한다
어쩌다 만들어진 여유 시간에 영화를 감상하는 것조차 이미 모든 스케줄을 짜놓고 그 시간의 틈안에서 버려질 시간을 이용하는 것 뿐이었다
그런데 예전에 신카이 마코토 작품을 감상할땐 지금과 같이 정확하게 짜여진 시간 계획으로 일정을 진행하며 작품을 감상한 적이 아예 없다
가령 '별을 쫓는 아이'나 '너의 이름은'을 감상할땐 직장인이지만 출근하지 않는 휴일이었고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더 이전에 일본에서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을 감상할때도 휴일중에 감상했지만 그때도 계획된 스케줄이 없었던 때였다
그리고 두 시기 모두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나에게 일정 계획에 대한 압박이 없었다는 것이다
당일 또는 단 며칠까지 해야할 일 없이 그저 그 시간을 어떻게든 보내기만 하면 되었었다
그것을 알게 되면서 떠오른 생각은 지금 이 순간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나에게 아버지라는 존재가 있어서가 아닌가? 라고 자각하게 되었다
만일 내가 아버지가 안계셔서 지금 현재 집안의 가장으로써 중대한 사안을 고민하고 있다면
나는 어쩌면 지금까지 위와 같은 시간의 여유로움을 가지지 못했을 것 같다
항상 다음 해야 할 일이 존재했을 것이고 그것을 걱정해야만 했을거다
마음의 여유란
시간과 재물의 여유에서 비롯된다
그저 무한히 널리고 쌓여있는 시간과 재물이 아니라
정해지지 않은 시간속에서 내 머리속에서는 당장 해야 할 일이 없어야 하고
유한한 재물이라고 하더라도 현재의 소비패턴 안에서 내가 죽을때까지도 유지되는 정도의 자본이라면
그게 바로 여유이다
이젠 그 여유가 없다
결혼해서 아이가 생기면서 나 이외에 고민해야할 일이 계속해서 쌓이고 있고
나 이외에 가족을 위해 소비해야 할 지출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그 시간과 자금에 대한 압박에 계속 시달리고 있고
이젠 지금까지 내게 큰 대들보였던 아버지조차 흔들리고 있다
곧 독립의 시간이 다가오는게 느껴진다
나는 더이상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
아이의 아버지가 되가는게 체감되고 있다
부모가 된다는건... 그건 지금까지 누렸던 내 삶의 여유를 없애는거다
어두운 극장의 현란한 영상을 보면서 오히려 위와 같은 깨달음이 떠오른 순간
나는 상영중인 극장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와 자판기 캔커피를 뽑아들고 생각에 잠겼었다
잡담/비공